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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인식
조회수 5 작성일 2016-11-26 13:23:22
예언의 이해
민수기서 11장 26절 #8211; 30절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것을 보면 구약의 예언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며 그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되어졌다고 하고 예언은 이 성경말씀만을 말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엄연히 잘못입니다. 사울왕도 사무엘의 선지자학교에 갔다가 그곳이 임하신 성령의 역사로 인해 예언을 하는 무리들 가운데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울왕이 한 예언들이 성경으로 받아드려졌다고 하는 말은 없습니다. 그리고 구약을 자세히 보면 성경말씀을 대언한 선지자들뿐만 아니라 이름없는 선지자들도 많습니다. 그들은 예언을 말했지만 그 예언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말씀으로서의 예언과 선지자들과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의 예언은 구분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대언한 예언자들과 성경말씀은 모든 세대의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주어진 하나님의 뜻과 목적이 나타나는 예언입니다. 그러나 성경으로 기록되지 못한 많은 예언들은 특수한 시대와 상황에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예언은 보다 귀한 예언과 그렇지 못한 예언으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예언은 예언자 본인에게 주시는 말씀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하라고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구약의 예언은 분별했다고 하는 경우가 없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예언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보내는 편지에서 분명히 분별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도 보면 마게도니아 사람이 바울의 환상중에 나타났을 때 실라를 비롯한 선지자들과 동역자들은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인지 분별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임을 분별했을 때 마게도니아로 건너간 것입니다.
오늘날도 성령이 무리들 가운데 충만하게 임하시면 성령의 나타나심이 현상으로서 나타나기도 합니다. 현상이 무조건 성령의 역사하심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어떤 현상들은 사역자들이나 사람들이 조장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조장된 현상은 우리의 영이 이미 그것이 조장되었다고 하는 것을 압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나타나는 현상들과 조장된 현상들은 우리의 영이 먼저 압니다. 우리의 영이 성령에 이끌림을 받고 있다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도 성령이 압도적으로 어떤 지역에 임하시면 그 현장에 있던 사람들 뿐만 아니라 그 현장에 있지 아니한 사람들에게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이런 일은 웨슬레의 경우나 웨일즈의 부흥등의 경우에 증거된 것들입니다. 오늘날도 성령이 강하게 임하시고 역사하시면 죽은 자가 살아나는 현상들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서구에서 이런 일들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것은 그들의 관점과 그런 현상을 적대시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출애굽한 소위 잡족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아니지만 애굽에 행하신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인하여 출애굽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공동체는 혈연적인 공동체와 동시에 신앙공동체가 합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잡족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불평을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날마다 주시는 만나를 먹으면서도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이 날마다 부어주시는 것들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대를 초월해서 그런 사람들은 모두 탐욕을 가진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에 만족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것들을 탐하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까지도 하나님안에서 만족하지 아니하고 불신자들과 비교해서 불평하고 원망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탐심이 자리하고 있으며 바로 우상숭배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잡족들은 우상숭배에 빠져서 그들의 눈과 귀는 소경되고 귀머거리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잡족들의 불평은 오염성이 아주 강합니다. 교회안에 불평하는 자들이 일어나면 교회는 금방 이 불평하는 자들이 놀이터가 됩니다.
불평으로 불신에 오염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도 안되는 말을 합니다. 그것은 애굽의 삶이 좋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그들은 노예였고 아들이 태어나면 죽임당하는 그리고 온갖 중노동을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값없이 맛난 것들을 먹었다고 합니다. 말도 안되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이 힘을 얻습니다. 오늘 교회안에도 어떤 자들은 불신의 세상에서 쾌락을 좇았던 때가 좋았다고 불평을 합니다. 교회에 나오니 하라는 것과 하지 말라는 것이 많다고 불평을 합니다. 심지어 불신자였을 때는 돈을 자기 쓰고 싶은 데로 썼는데 교회다니닌까 그런 행위에 죄책감이 든다는 것입니다. 이런 불평은 금방 회중들을 오염시키고 하나님의 기준을 제시하는 설교자들을 향해서 분노하고 원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원망에 가득차 오르게 되자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진 끝에 불을 보내십니다. 사람들이 불타죽고 소유가 잿더미가 됩니다. 그 때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께서 불심판을 멈추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먹던 것들이 눈에서 왔다 갔다 하고 고기를 먹고 싶은 탐욕이 그들을 지배하자 발광을 합니다. 그리고 불에 타 죽은 자들을 인해 웁니다. 울되 회개의 눈물이 아니라 자기의 처지를 인한 자기연민에서 나오는 울음입니다. 그 상황에서 모세는 자신이 하나님이 된 것처럼 행동합니다. 모세는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자세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회중들의 불신앙이 모세까지도 불신앙으로 떨어뜨린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비롯한 지도자들 칠십명을 회막앞으로 이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회중들에게 몸을 거룩하게 하여 내일 고기먹기를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구하시는 것을 허락하시지만 그것 때문에 우리에게 분노하시고 심판하십니다. 바로 우리가 하나님 그분을 구하기 보다 우리자신의 필요에만 집중할 때 하나님은 분노하십니다. 그래서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고 좋아할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달동안 고기를 먹이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데도 모세는 여전히 자기가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여기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불신으로 하여 모세의 눈과 귀가 어두워 졌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필요를 채우시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 세우시고 신앙의 회복을 요구하십니다. 우린 기도응답이 먼저이지만 하나님은 신앙회복이 먼저이십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칠십인을 장막에 세우시고 모세에게 성령을 부으시고 말씀하시며 동시에 칠십인에게도 성령을 부으십니다. 그 때 그 칠십인이 예언을 합니다. 바로 성령충만의 현상입니다.
그 때 그 칠십명중 하나였지만 함께 하지 아니한 엘닷과 메닷은 성령이 부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이 예언을 합니다. 그러자 진중에 남아있던 회중들에게서 큰 소란이 일어납니다. 그 때 한소년이 그 일을 모세에게 고합니다. 바로 그 때 칠십명 중 하나인 여호수아가 모세에게 그 두사람의 예언을 못하게 하라고 요구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공생애중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역을 하자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 사역하는 자를 못하게 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사역하는 자를 금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말씀에 불순종하고 하나님앞에 나오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예언하는 자들을 향해 분노하며 시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임하시고 기름을 부으시며 예언하게 하실 때에도 때론 악한 자들에게까지 함께 하십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예언함은 은사는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일회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신약의 예언은 은사중 하나로써 지속적으로 또는 자주 나타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의 성령은 내재적인 성령이 아니라 일회적으로 또는 외부적으로 입혀지는 성령이었습니다.
이때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아니하고 그럼에도 예언하는 자들이 예언하는 것을 금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든 백성들에게 성령을 부으셔서 다 예언함으로 선지자라고 하는 사역자가 되기까지 성장하게 되길 원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언의 유익함 때문입니다. 예언은 교회를 세웁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삶으로 더욱 정진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신약에 사도 바울까지도 고린도전서 14장 39절에서 고린도교회 모두에게 예언하길 사모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4장 5절에서 고린도교회 모두가 방언하길 원한다고 하면서 특별히 예언하길 원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언이 자주 그리고 지속적으로 나타나서 교회에 도움이 되면 교회는 그런 사람들을 교육하여 예언사역자로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선지자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전체가 선지자 되길 원한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성령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입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성령받으므로 선지자가 된다면 그래서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알아 그리로 행한다면 하나님의 비젼을 놀랍게 성취될 것이고 하나님께 날마다 큰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교회에 오중사역자을 세우시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선지자입니다. 모세가 그렇게 바라고 열망했던 선지자사역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어긋나게 예언사역자 즉 선지자사역에 대해 부정적이며 교회에 선지자사역이 행하여지는 것을 기대하지도 그리고 생각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언을 설교와 동일시하거나 성경말씀으로 이해합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과 모세가 말하는 것과 심히 어긋납니다. 모든 사람이 설교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예언과 성경이 반드시 동일시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줄이거나 늘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언을 통해 불신자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옵니다. 왜냐하면 예언은 불신자들을 위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역동적이지 못하는 이유는 신앙생활을 너무나 의식화 시켰고 교직화 시켰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은 목회자들 몫이고 회중들은 그들에게 사례비 주는 자들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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