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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인식
조회수 0 작성일 2016-05-11 12:49:33
안디옥교회처럼
사도행전 13장 1절 - 3절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것은 사소한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는 사회에서의 삶은 불신자들과 똑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같은 목적을 위해 살면서 교회와서야 하나님을 찾고 성령님의 인도를 구합니다. 이렇게 되어지면 우리는 결단코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살 수 없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몇 번의 실수를 보이기는 했지만 항상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다윗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때로는 자기의 생각을 따라 하나님께 묻지 아니하고 세상사람들이 하는 판단을 따라 행하여 큰 아픔을 경험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다윗은 하나님의 깨닫게 하심을 따라 즉시 회개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시글락에서 가족들을 아말렉 군대에게 빼앗겼을 때에도 먼저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나아가서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다윗은 주의 날에 성전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 이외의 삶은 오늘 성도들처럼 그렇게 하나님과 먼 삶을 산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하나님을 찾고 구하고 따라가는 삶을 산 것입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신앙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심지어 요셉은 감옥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과 함께 하였고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알았기 때문에 감옥에서 더욱 더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나게 된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예수님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예수님이 열두 살 쯤 되셨을 때 부모님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에 예배드리러 왔다가 당시 성전의 종교지도자들과 대화를 나누느라 부모님과 떨어져야 했습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율법지식을 가지고 그들의 박식함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는 삶을 말씀합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지식은 죽은 지식이었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죽은 지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듣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임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종교지도자들은 어린아이의 놀라운 말에 놀라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바리세인이나 사두개인들의 말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즉 권세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무엇을 결정할 때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기 보다 소위 다수결의 원칙을 따릅니다. 그래서 다수결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기고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여깁니다. 이것은 너무나 세상적이고 불신자들의 취하는 의사결정 방법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우리까지도 교회내에서 세상의 방법을 따라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다수결이기 때문에 받아드리고 수용하는 것입니다. 이런 체계안에서는 성령이 주도하시는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는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알기 위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여 하나님께로 나아가며 하나님의 주시는 말씀을 따라 교회가 분별하고 순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이 하나의 상상이 아니라 실재가 되어질 때 교회는 성령님과 동행하고 다이나믹한 교회를 보게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성도들이 먼저 자기의 생각과 자기의 방법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행하심을 보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지도자들은 교회내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 못한다면 교회를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이끌어 가는 것이 처음부터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안디옥 교회의 의사결정 체계가 오늘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안디옥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온 선지자들, 그 중에 한사람이 아가보였는데, 선지자들이 교육되고 자라나서 교회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아가는 체계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과반수찬성으로 의사를 결정하는데 익숙한 것이 아니라 먼저 교회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 익숙한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런 안디옥교회에 이제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먼저는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아가는데 훈련되어진 것을 보여 줍니다. 아무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아가고자 하여도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 낯설어 하거나 터부시 하면 안디옥교회처럼 될 수 없습니다.
다섯명의 선지자들과 교사들은 종종 하나님을 예배할 때 금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금식도 예배인데 이것은 철저하게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받는 수단으로 금식하거나 금식한 날짜는 훈정처럼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금식은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라 예배하는 것을 말하지 힌두교 사람들처럼 공로를 쌓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안디옥교회가 금식 즉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예배가운데 설 때 그들은 성령의 음성을 듣습니다. 즉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모두 들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교회 중 한명이나 일부의 사람들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들은 사람들은 들은 것을 교회에 전했습니다. 교회는 그 들은 것을 분별합니다. 그 들은 것이 바로 하나님이 부르시고 그리고 시키시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나바와 사울을 먼저 부르셨습니다. 바로 목적을 보이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교회는 조정해야 합니다. 즉 그 동안은 바나바와 사울이 담임교역자와 부교역자의 역할을 했는데 그 자리를 누군가 대신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시키시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길입니다. 여기서는 어떤 일인지는 말씀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는 즉 하나님의 시키시는 일을 위하여 준비케 하고 보내는 것입니다. 이에 교회는 하나님의 주시는 음성을 따라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두사람에게 안수합니다. 안수 할 때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이 함께합니다. 교회가 이제 두사람을 파송합니다. 바로 교회의 파송을 받습니다. 오늘날 문제는 자칭 교회의 권위아래 있지 아니하고 행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열정과 헌신은 눈물겹지만 교회의 권위아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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