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자 | 관리자 | ||
| 조회수 | 2315 | 작성일 | 2016-12-21 10:37:06 |
| 신앙회복이 관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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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장 12절 ~ 18절
어느 시대를 무론하고 세상의 방법을 따라 사는 자들이 삶이 형통해 보이고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많은 신앙의 선배들은 이 모순 때문에 괴로워하고 갈등했습니다. 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살아가는데 삶이 어렵고 고난이 이어질까 하는 것이 그들의 마음을 괴롭게 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지 아니한 세상의 방법 즉 인본주의적인 태도는 하나님의 약속이 없으며 하나님이 기뻐하심도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독하게 세상중심의 삶을 살면서 그래서 자신의 정과 욕심에 노예된 삶을 살면서 삶의 현장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면 하나님께 감사헌금을 드리고 그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합니다. 즉 자신들이 그렇게 잘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라는 것을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한번도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신이 원하는 바 즉 바라는 바가 성취되길 원하고 교회를 찾는 것입니다. 철저한 자기중심적인 자세로 이는 하나님과 원수된 자세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한다고 하면서 때론 하나님의 길로 행하려고 하기 보다 우리가 익숙하고 세상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행하는 삶의 방식을 붙잡고 따라 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시는 지 아니면 불편해 하시는지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도 없이 오직 자기가 바라는 바를 이루는데 중점을 두고 행합니다. 그러면 때론 그런 일들이 아주 잘 이루어 지고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립니다. 그러나 그런 삶에서는 하나님을 조금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아브라함의 씨가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갈 것이라고 하는 말씀을 들으며 그들은 즉각 세상의 방법을 동원합니다. 하갈이라고 하는 애굽출신의 여종을 택해 자손을 보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이나 하나님의 길로 상치되지만 그러나 하갈은 자식을 낳는데 그것도 아들을 낳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무척 기뻤을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그것이 낳게 될 결과를 알지 못했습니다. 하갈과 하갈의 소생이 사라와 이삭에게 어떤 존재들이 될 것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은 것은 인본주의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행하고 나아가는 자들을 핍박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방법을 따라가면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시지 않으셔도 어느 정도 성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을 버린 결과물이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세상적인 성공을 거둔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행하심은 보이지 않게 됩니다. 바로 하나님 크기의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태문이 닫히고 잉태하지 못하는 상황을 맞게 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들이 처한 상황이 이와 같습니다. 소위 하나님을 향한 열심은 지독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는 깨어지고 삶에서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그 결과 태문이 닫혔습니다. 그래서 교회와 성도들의 삶에서 하나님의 행하심이 보이지 않습니다. 교회들마다 성도들의 숫자마저 크게 줄어들고 불신자였다가 하나님께로 돌아온 경우는 거의 희박합니다. 대부분이 수평이동입니다. 가나안 성도라고 불리우는 자들이 교회들을 떠 돌아 다니는 것입니다. 이들은 일반적인 신앙생활의 모양을 가지고 있지만 교회에 속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이런 일들은 예수님의 공생애 시대나 사도들 시대에 바리세인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들은 제자하나 얻기 위해 산과 바다를 건너 다녀야 했습니다. 그래도 겨우 하나 얻을까 말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과 사도들에게 사람들이 몰려가니 배가 아파서 죽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남으로 태문이 닫히는 경우는 우리의 환경에도 있습니다. 학개선지자시대에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단과 주위이방사람들의 훼방으로 성전을 재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대신에 그들은 자기의 집을 잘짓고 밭을 일구고 소의 숫자를 늘리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당시 성전터에 성전이 지어지지 않는 것은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 때 그들의 사업에 태문이 닫혔습니다. 농작물이 심는 것보다 거두는 것이 적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올해는 가뭄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해에 그런 일이 되풀이 되면 바람이 걸칠게 불어와서 그랬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므로 태문을 막으셨는데 그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하는 자들은 깨닫지 못합니다. 세상적으로는 박사학위 백개받은 것처럼 말하는데 하나님께는 무지 합니다. 그 때 학개 선지자가 일어나서 그들의 무지를 깨닫게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가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일에 참예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훼방을 핑계삼지 말고 하나님만을 신뢰하므로 나아갈고 합니다. 그 때 하나님은 즉 그들이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하나님의 일에 동참할 때 막힌 태문이 열립니다. 다시 작물들이 힘을 얻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면 우리로 인해 고추를 비롯한 작물들과 숭어를 비롯한 물고기들 등 모든 자연이 고통을 당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하길 불신자들까지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길 학수고대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태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삼손의 시대와 엘리사사시대는 이어지는 시대입니다. 그 때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찾지도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블레셋을 강성하게 하셨습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침노하여 곡식들과 가축들을 싹쓸이 해 갑니다. 심지어 농기구 조차 블레셋의 허가를 맡아야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단지 종교생활에 열심을 냅니다. 다가오는 어려움과 핍박을 모면하기 위해 열심히 성소를 찾으며 하나님앞에 통곡도 하고 예물도 바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요 하나님의 길을 알려고 하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영적 암흑기였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도 영적암흑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대교회들도 아주 많지만 그리고 새벽마다 눈물 뿌려 기도하지만 그것은 종교적인 모습들입니다. 누구도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떠났으면서도 하나님을 떠났다고 하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강댓상이 가리울 정도로 뜨겁게 기도하고 헌금도 많이 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버렸냐고 합니다. 그러나 예배당은 열심히 찾지만 하나님을 찾지도 구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태문이 닫히고 세상으로부터 수치와 조롱과 멸시를 당합니다. 당시 엘가나는 제사장 집안 사람으로 실로에 있는 성소를 찾아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이는 당시 사람들이 하던 모양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들을 상징하는 한나는 태문이 닫혀 자식이 없는 자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들을 핍박하는 자로서 브닌나는 자식을 본 자였습니다. 이 브닌나는 한나가 얘도 못나는 여자라고 핍박하고 조롱하였습니다. 어찌나 핍박과 조롱이 심하던지 울고 먹는 것도 멈출만큼 고통이 컸습니다. 그런데 한나로 하여금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사무엘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남편 엘가나의 어떤 위로도 한나에게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엘가나의 가족들은 장막절 즉 수장절에 실로를 찾았습니다. 그 땐 거둔 열매들과 곡식들로 인해 즐거워 하던 때였습니다. 남들은 다 실로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난 다음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성소앞에서 자신의 처지를 인해 괴로워 하고 하나님께 간절함으로 기도하며 서원합니다. 한나는 하나님을 찾았고 구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만난 봐 되십니다. 한나가 바로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는 즉 신앙의 회복과 부흥에 선 것입니다. 한나는 아주 오랫동안 기도했습니다. 울면서 간절함으로 기도한 것입니다. 그 때 엘리대제사장은 한나가 술취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포도주에 취해서 있는 것으로 여긴 것입니다. 그만큼 엘리는 영적으로 어두웠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었습니다. 그 때 한나는 자신이 술취한 여자가 아니라 아이를 갖지 못함으로 인해 당하는 핍박과 고통으로 인해 하나님의 신원하심을 바라보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때 엘리가 한나를 위해 하나님앞에 축복합니다. 이 엘리의 축복은 곧 이루어 집니다. 하나님을 떠났고 타락한 영적으로 어두운 제자상이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의 축복의 말을 들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도자들이 의롭고 거룩하기 때문에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용하시기 때문에 들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았다고 해서 결단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한나는 엘리제사장의 축복의 선언을 듣고 그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에 큰 확신이 생겼습니다. 이 확신은 우리가 확신해야지 하고 노력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셔야만 생깁니다. 한나는 엘리대제사장에게 은혜입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엘리라고 하는 인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제사장이라는 직분을 말합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고 세우신 대제사장을 말합니다. 즉 한나는 하나님께 은혜받길 원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가브리엘 천사장으로부터 은혜받은 자라고 하는 말을 들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은혜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를 말합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한국교회가 회복되고 부흥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너무나 극명하게 요구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은혜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도들 숫자는 많지만 문제는 새사람으로 변화되는 하나님크기의 역사가 없습니다. 열심은 있지만 은혜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 크기의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제 일어나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은혜가 다시 임하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어떤 소망도 없습니다. 한나는 엘리대제사장이 선포한 축복의 말씀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다시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부닌나가 여전히 조롱하고 멸시하지만 울지 않습니다. 그런 한나를 보고서 부닌나가 더욱 기고만장하게 멸시를 해도 이전처럼 먹는 것을 포기하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한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얻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 말씀 즉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됨으로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큰 확신속에서 평안을 가질 때 우린 더 자주 더 크게 다가오는 원수들의 핍박과 조롱앞에서 약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실하고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됩니다. 그래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 기다리는 자세는 적극적인 신앙의 태도입니다. 기다리는 자세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 따른 행위가 요구됩니다. 우리가 교회의 회복을 위해 나아가며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고 해도 늘 교회에서 설교하면서 이전처럼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설교에 머물러 버린다면 이는 기다리는 자세가 아닙니다. 교회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이 주시는 큰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그 때 대적들은 우는 사자들처럼 우리를 두렵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우리에게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빼앗지 못합니다. 때가 되면 우린 하나님의 이루심을 봅니다. 그 때 대적들이 와서 저 일이 어떻게 이루어졌느냐고 묻습니다. 놀랍다고 합니다.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대적들에겐 놀라움 자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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